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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우야, 아빠하고 산책 다녀올까?

 

학교에 다녀온 첫째가, 옆에서 컴퓨터로 뭘 하는듯 싶더니, 이내 너무 심심해 한다.

자전거라도 타고 오라고 해도, 혼자는 가기 싫다며 꼭 아빠나 엄마가 같이 가잔다. 

 

벌써 6학년이고 이제 며칠있으면 중학교에 가는 아들이, 아직도 혼자 나가서 노는걸 어려워 하나?? 싶기도 하지만

장애가 있는 아이라, 이해하고 보호가 필요한 게 맞는 듯 하다

(그래도 집 앞 놀이터 정도는 혼자 가라 좀. ㅎ ㅎㅎ 학교도 혼자 가고 혼자 올수 있으면서;;)

 

산책 다녀오자는 말에 아이가 화색을 하며 반긴다

'이렇게 좋아하는걸.. 이게 뭐라고 쯥;;;' 

하는 생각과 함께 집을 나선다. 

 

"건우야 어디 가고 싶어?"

"음.. 어디로 갈까? 음...음.."

 

아이는 항상, 모 아니면 도..

어딜 갈지 이미 결정하고 왔던가, 그게 아니면 결정을 아예 못하던가. 

 

"백화점 가 볼까?"

"음.. 그럴까?? 근데 백확점 가서 뭐해???"

"사람들도 보고, 산책도 하는거지~~"

"아. 그래? 거기 뭐 팔아?"

"이것저것 많이 팔지??~~~"

"나 사고 싶은거 있어??"

 

지능이 꽤 올라왔는데도, 아직도 '나 사고 싶은거 있어?'라는 의문형 말을 가끔 한다. 

'아빠~ 나 사고 싶은거 있어요~" 라고 고쳐줘도 이게 참 어려운가 보다. 

 

이렇게 말을 한다는건, 자기가 뭐 사고 싶은게 있다는거다. 

요즘 요놈이 말할때 빌드업이 늘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몇단계 전 이야기를 하는거.. 

이런걸 느낄때 마다, 영악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렇다. ㅎㅎ

 

어쨌든, 요놈은 지금 백화점 지하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서 과자를 하나 사고 싶은거다. 

[아빠가 그래도 그 정도 눈치는 챈다. ㅎㅎㅎ]

 

"백화점 지하로 가 볼까?"

"왜? 거기서 뭐 사게?"

"음.. 거기에 뭐뭐 있지?"

"어... 과자 파는 곳도 있고... 어.. 또...... 아빠 과자는 왜 백화점에서 팔아??"

 

이미 꽃혔다. ㅎㅎ 가야겠구나. 안가면 오늘 저녁 세시간동안 귀에서 피나게 이야기 하겠다. 

아이와 백화점 지하의 마트에 갔다. 

새우깡을 하나 고르고 계산을 했더니 아이가 계산하시는 분께 웃으며 크게 인사 한다. 

"고맙습니다!!!!"

그걸 본 직원 분이 활짝 웃으며 대답해 준다 "네~ 좋은 하루 되세요!!"


첫째는 장애가 있다. 

어릴때는 자폐였고, 지금은 발달장애 2급이다., 그리고 3년전에 한쪽 눈의 망막이 분리되어 버려서 시각장애 2급도 있다. 

 

사실, 아내가 나에게 가장 고마워 하는 부분이 두개가  있는데, 

 

첫번째는 아이와 많이 움직여 줬다는 거. 

자폐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선생님이 하는 말이

"자폐아이들은, 자기를 향한 에너지가 많아서, 그 신체 에너지를 다 써야 다른 사람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몸으로 많이 놀아 주시고 나면 엄마 아빠를 보기 시작할꺼에요" 라고 하셨고, 

그래서 5시 칼퇴를 하고 6시부터 8시까지 몸으로 놀아주기 시작했다. 

5시 칼퇴를 하기 위해 새벽네시에 출근을 했고(그때 당시는 일이 참 재밌기도 했다) 

세시에 일어나기 위해 9시에 아이와 함께 잠들었다. 

아마 그때부터 미모가 시작이었던것 같다. 

 

두번째는, 시각장애 판정을 받았을때 해줬던 위로.. 

동네 잘한다는 안과에 갔더니, 큰병원 가보라고, 그래서 한림대 병원에서는 "제가 해 줄 수 있는게 없어요"라는 개뼉다귀 같은 말을 듣고, 분당 서울대 병원 안과에 갔었다. 

 

"망막이 이미 분리되어 수술이 불가능합니다. 아마 아이는 안보이게 되는걸 알았을텐데...

어른이었다면 말을 했을테지만........

방법은 이식 수술밖에 없습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주시려던 교수님의 말씀을 아내 혼자 듣고 왔다... 

아이가 잠 든후, 아내가 눈물을 펑펑 흘렸다. 

 

"어떡해, 우리 건우 어떡해., 내가 좀 더 신경 쓸껄, 내가 좀더 신경 쓸껄..

자폐 있는 것도 힘든데, 평생 한눈으로 살아야 하는데.. 어떡해..."

 

내내 울었고, 나는 속으로 눈물을 움킬수 밖에 없었다. 나까지 흔들리면 안되니까...

 

"여보, 지금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걸 하자. 

건우는 양쪽 눈이 다 잘 보인 적이 없었을꺼고, 그래서 지금 그게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할꺼야, 

우리가 할 수 있는건, 한 눈으로 세상을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아닐까 싶다."

이게 뭐 큰 위로였는지 모르지만, 신기하게도 아내는 눈물을 그쳤고, 다음날부터 좀 더 씩씩해졌다. 


아이에게 세상을 배운다. 

 

아이와 함께 다니면 배우는게 많다. 

 

물건을 사고 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건, 엄마 아빠에게 배웠지만

저렇게 크고 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면, 상대방이 항상 활짝 웃어준다. 

이미 아이는 세상을 살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집안에 가만히 있으면 생각도 몸도 늘어지는데, 

아이와 같이 몸을 움직이면 몸이 다이내믹 해지며, 생각도 "해보자!!" 하고 바뀌는게 느껴질때가 많다. 

 

아이는 부모에게 세상의 선생님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다름"이 나에게 "배려"를 가르친다. 

 

아이가 하는 말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면서,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 하면서 그 사람 말을 신경쓸 수 있게 된거 같고

아이가 뛰어가다가도 계단이 나오면 우뚝 서서 아빠 손을 잡고 내려가는걸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을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렇기에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것..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세상을 배우고 배려를 배운다. 

 

 

"아빠가 없으니까 외로워"

"나는 아빠 사랑하는데, 아빠는 나 안사랑하는구나??"

라는 감정 단어를 누구보다 잘 쓰는 아이와 

오늘도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보는 시선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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